완전 언어 부리기

Art in culture 2002년 7월호 > Focus

안상수 <한글상상>展 5.25~7.21 로댕갤러리

내가 이태리 볼로냐 대학에서 공부하던 1991년에 움베르토 에코는 <완전언어(lingua perfetta)를 찾아서>라는 강의를 하고 있었다. 수년천 동안 인류는 제한된 수의 기본적인 의미소나 음소를 기반으로 해서 합리적인 "완전언어"를 만들어 내려 노력해 왔으나 그러한 노력은 모두 다 실패했다는 것이 그 강의의 요지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실제로 통용되고 있는 알파베트나 아랍문자, 한자 등은 모두 누가 만들어냈는지 알 수 없는 자연발생적인 문자라는 것이다. 에코는 한글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종교와도 같은

 

한글이 중요한 것은 세계 인류사를 통틀어 음운론에 기반하여 인공적으로 창제되었으면서도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살아있는 유일한 문자체계라는데 있다. 이런 점에서 한글의 중요성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가고 급기야 한글날마저 공휴일에서 제외되는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이 시린 것은 안상수 선생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전시를 보면서 한글은 안상수에게 있어 하나의 종교와도 같은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별이었다…의미가 되어….. 땅 위에 떨어졌다>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주련>에서 숭배되고 모셔지고 있는 것도 고승의 말씀이라기 보다는 그 말씀을 이루고 있는 한글 자체다. 마치 부처님의 그림이 대웅전 벽에 모셔져 있듯이 별 처럼 숭고한 한글이 주련 위에 곱게 새겨져서 모셔져 있는 것이다.

<주련>의 한 글귀인 <복숭아꽃 송이송이 붉도다>의 "송이송이"는 정말 <송이송이>처럼 탐스럽게 보이고 <송이송이>하게 꽉 찬듯 느껴진다. 표음문자인 한글은 일정한 음가 (音價)를 나타내는 추상적인 기호다. 그런데 안상수는 그러한 한글의 생김새와 의미를 새롭게 결합시킨다. 이런 점에서 그의 <송이송이>일종의 형상문자 (graphic characters)라 할 수 있다. 문자는 원래 그림에서 시작하여 그림문자, 상형문자 (은나라의 갑골문자나 이집트의 상형문자 등)를 거쳐 알파벳이나 한글 등의 추상적 표음 문자로 발전해 왔다. 예컨대 A라는 문자의 생김새는 그것의 음가나 의미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하지만 인터넷의 등장은 이러한 추상적 표음문자의 이미지 측면을 이용하여 "TT = 눈물짓는 모습"이라는 식의 새로운 형상문자를 낳았다. 안상수가 한글의 생김새를 이용하여 새로운 형상문자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새로운 기호체계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다. 우리가 그의 포스터 앞에 섰을 때 얼른 읽어내지 못해 당혹하게 되는 것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강태환 재즈 콘서트>나 <죽산 국제 예술제> 포스터 앞에 서게 되면 관객은 일단 당혹감을 느낀다. 멀리서 보면 무슨 형상을 지닌 이미지 같은데 좀 더 가까이서 보면 무슨 글자 같기도하다. 인내심을 갖고 읽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글자는 하나 하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안상수의 포스터는 우리가 그것을 텍스트를 포함한 작품으로 "지각"하기는 쉬우나 글자처럼 보이는 저 텍스트를 한글로 기호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한글을 부리다

기호화하기, 즉 "sign-ifying"은 하나의 대상을 기호(sign)로 만들어내는 행위를 가리킨다. 안상수는 한글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그것을 일상적 사용방식이나 맥락과는 다른 새로운 유형에 편입시켜 새로운 기호로서 재생산해 낸다. 이것을 그는 "한글을 부린다"고 표현한다. "부린다"는 어떤 것을 내 뜻대로 조종하고 사용한다는 뜻도 있지만 "재주를 부리다" 혹은 "요술을 부리다"에서처럼 신기한 일을 해 낸다는 뜻도 있다.

<강태환 재즈 콘서트> 포스터에 담긴 텍스트는 "강태환 알토 색소폰 프리뮤직 곰팡이 1995 05 12 1930"가 전부다. 이 단순한 내용(주제)을 아래로 네번 반복하고 그것을 다시 좌우 대칭으로 반복하여 도합 여덟번의 변주를 보여준다. 하나의 모티브를 위 아래로 뒤집고 좌우로 뒤집는 변주인 셈이다. 여덟 마디로 이루어진 재즈의 한 소절과 같은 구조다. 가까이서 보면 자음 모음 하나 하나가 대위법을 이루는 현란한 음표처럼 보이고 좀 떨어져서 보면 역동적인 멜로디와 싱코페이션의 리듬마저 들려오는 듯하다. 이는 음악의 시각화이며 동시에 한글의 음악화라 할 만하다. 안상수의 한글부리기는 정말 신기(神奇)한 신기(神技)에 의한 신기(新器)만들기다.

<제1회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 작업전>을 위한 <해변의 폭탄고기> 포스터는 매향리의 미공군 사격 연습장인 바닷가 모래 사장에 널려 있는 수 많은 폭탄의 잔해들을 배경 사진으로 깔고 있다. 폭탄의 잔해들은 언뜻 보면 바닷가 모래밭에 떼지어 올라와 쉬고 있는 바다표범이나 거북이 떼 혹은 물새 떼처럼 느껴진다. 자연의 섭리상 바닷가에 무엇인가가 떼지어 몰려 있다면 그것은 야생동물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본능적 상식이다. 아,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폭탄의 잔해다. 야생동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인간이 남긴 폭력의 쓰레기가 대신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사진 위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씌여 있다. 문자같기는 한데 우리는 그것을 읽을 수가 없다. 한글을 닮았으나 한글은 아닌, 뜻모를 그 글자를 어떻게 기호화하고 해석해야 할지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부호는 한글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들어앉아 있어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마치 야생동물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는 폭탄의 잔해처럼.

공간과 작품의 어울림

이번 전시에서 꼭 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전시공간과 작품이 서로 잘 어울어져 있다는 점과 전시기획자의 세심한 배려가 곧곧에서 발견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문자는 별이었다…>는 그저 포스터 한 장에 인쇄되어 전시되었을 수도 있으나 이를 커다란 파나를렉스에 인쇄하여 환한 뒷조명으로 빛나게 한 것이나 포스터들 사이즈에 맞게 각이 져서 떨어지는 조명 등이 그러하다. <보고서/보고서>를 한장 한장 넘기며 보여주는 2-채널 비디오 전시 역시 <보고서/보고서>가 "報告書"고 "寶庫書"이며 따라서 "보고서 (보고나서 혹은 "after seeing that" 혹은 "as you have seen that")"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데 도움을 준다. ■

 
  위 : 수파티스트 <W.C. 아트숍>
아래 : 제2전시실 전경. 한수정<그림자로 보기> 공동작업 <이미지드링크 자판기>